부정적 상황과 사상의 힘: Pink Floyd의 <The Wall> 소외 모티프 분석

2022. 12. 27. 16:58전체 글/대중음악

이 글은 2022학년도 2학기에 수강한 <한국현대소설론> 강의의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부정적 상황에 처했을 때 인물이 어떠한 행동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소설의 이야기는 고유성을 획득하게 된다. 지금의 소설에서 고난에 직면한 인물은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선택을 해나가겠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막다른 길에 도달한 인물은 의지할 만한 사상에 천착하곤 하였다. 산업혁명 이후로 한쪽에서는 자본주의가,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주의가 세상을 호령하였으며 나폴레옹의 물결이 지나간 자리엔 민족주의가 발아하여 근대 이후 세계의 비극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들은 모두 이들 사상에 깊이 의존했다.

 

결국 현대문학에서 비극은 개인이 현실에 어떻게 굴복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작가들이 능동적이면서도 다소 허무주의적인 답을 제시하는 사유의 예술이다. 영국의 락 밴드 핑크 플로이드는 그들의 앨범 <The Wall>에서 현대 사회의 개인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과, 이 문제가 어떻게 그를 부정적인 결말로 이끄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파멸 이후의 미래를 조명하며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후 수많은 비극 작품들이 도달한 결론을 뛰어넘는 사유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핑크 플로이드는 대중음악의 형식을 빌려 앨범 <The Wall>에서 현대 사회의 소외 문제를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앨범을 구성하는 곡들은 끊어짐 없이 서사적으로 연결되며 무한선율을 이루고 있다. 무한하게 흐르는 선율과 이야기 위에 핑크 플로이드가 계속하여 던지는 질문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게 되는가’이다. 그들은 개인을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사상으로 이끄는 사회를 고발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The Wall>에서는 소외 모티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앨범은 가상의 인물 ‘핑크’의 출생에서 시작하여 이 인물이 극단적인 파시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핑크’는 주변 인물들과 사회에 상처받는 인물로, 이러한 외부 갈등으로 인해 벽돌을 둘러쌓아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소외 모티프는 앨범 전반에 흩어진 <Another Brick in the Wall> 세 곡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된다.

 

Pink Floyd,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2"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1>에서 유년기의 핑크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온전히 형성하지 못한 상황을 한탄하며 벽돌을 쌓기 시작한다. 유년기에 온전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실패한 가족 관계는 개인을 파시즘으로 치닫게 하는 첫 단계이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2>에서 핑크 플로이드는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는 교육 제도를 더욱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곡에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교육은 필요 없어. 우리에게 사상 통제는 필요하지 않아”라고 합창하는 부분은 그 문제의식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3>에서 ‘핑크’는 아내의 외도를 목도하게 되고, 마지막 안식처인 ‘집’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벽돌을 쌓게 되고, 마침내 벽 안에 완벽하게 갇히게 된다. 이렇듯 앨범에서 소외 모티프는 ‘핑크’가 벽을 쌓는 계기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벽을 쌓기 시작한 ‘핑크’가 벽이 완성되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벽 안에 갇힌 상황을 한탄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인간사의 많은 극단적인 결과가 하나의 사소한 계기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상처받은 ‘핑크’가 파시스트로 변모하게 하는 방아쇠는 지친 ‘핑크’의 몸에서 일어나는 자아분열적 투쟁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자면, 실존적 분열에서의 패배가 소외를 분노로 표출하는 기폭제가 된다. 여기서의 실존적 분열은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펼치는 것을 방해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거나 사회의 변혁을 꾀하는 지점에서 발생하여 그의 자아를 분열시킨다. 그래서 순식간에, 이전까지 파시스트적 면모를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핑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선 무대에서 대중들을 폭력과 분노로 선동하는 사람으로 급변한다. 이 변화는 입체적인 인물로서의 ‘핑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 ‘핑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이 증오하던 사회를 답습하여 개인의 감정을 제거하고, 분노를 사회적 약자에게 표출하고자 한다.

 

Pink Floyd, "The Trial"

재판으로 회부된 ‘핑크’에게 판검사가 던지는 말은 이야기의 의식을 완벽하게 개인에서 사회로 전환시킨다. 그들의 시선에서 ‘핑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보여주었기에 체포된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핑크’는 내면의 가장 깊숙한 두려움을 표출하였기에 벽에서 나와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벌을 선고받는다. 여기서 ‘핑크’의 가장 큰 두려움은 소외되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삶에서 주변적인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파시스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핑크’가 만들고자 하는 이질적인 전체주의 사회는 현실의 사회와 너무나 닮아있었기에, 이는 사람들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자각하게 할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핑크는 위험한 사상으로 사람을 경도해서가 아니라, 체제 전복을 꾀했기에 제지당한 것 뿐이다.

 

Pink Floyd, "Outside the Wall" 앨범의 마지막 곡.
Pink Floyd, "In the Flesh?" 앨범의 첫 곡. "Outside the Wall"의 마지막 가사와 이어진다. 이윽고 이미 파시스트가 된 핑크의 모습을 먼저 제시하여 감상자와의 거리를 확보한다.

올바른 사회라면 상처 입은 개인이 벽에서 스스로 나오기까지 도움의 손을 건네고, 그를 자기 삶의 중심으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하지만 <The Wall>의 사회는 벽돌벽을 무너뜨려 ‘핑크’를 강제로 세상에 드러내 보일 뿐이다. 이 사회에서 소외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과 첫 곡은 이어진다. 두 곡의 맞닿는 가사를 연결하였을 때 나타나는 “Isn’t this where / we came in...?”을 통해 밴드는 소외의 악순환을 지적하고 있다. 소외는 또다른 소외로 이어지고, 새로운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다. ‘핑크’가 앨범의 첫 곡으로 다시 돌아왔듯이.

 

앨범 속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현실 세계도 다르지 않다. 소외는 소외를 낳는다. 소외는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고독한 개인에게 세상으로 나올 것을 명령한다. 도태되거나 스스로 나와서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라고 한다. <The Wall>은 이러한 사회를 직시하게 한다. 핑크 플로이드는 첫 곡 <In the Flesh>에서 파시스트 ‘핑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극의 거리감을 형성한다. 그들의 의도는 자명하다. 현실로 ‘핑크’의 저항의지를 옮겨 와 세상의 변화를 종용하는 것. 이 거리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는 나름 희망적이다. 앨범 속 ‘핑크’의 저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앨범이 순환하는 것처럼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매 순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것이기에.

 

평가: 10/10